자발적 관심사/Design

디자인 학부생으로 배우고 있는 것들

2sim 2020. 7. 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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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학부생에게 학교가 가르치는 것

같은 학부 후배가 있는데, 사실 별로 안 친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금 어떤 사고방식으로 지금 행동패턴을 보이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정말 별일이다. 내가 사람을 다 안타까워하고) 그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 그냥 계속 되뇌이다가, 오히려 나에게 더 좋은 생각인 것 같아서 적어둔다. 

 

 

디자인 학부에서 도대체 너는 무엇을 배우는가? (달리 말하자면, 디자인 수업은 도대체 뭘 가르치는가?)

 

 

이 질문으로 나는 지난 몇 년간 고통스러웠는데, 배운 이론과 해오라는 과제가 도통 맞춰지지 않아서였다. 배운 건 A인데 자꾸 결과물은 C를 내라고 한다. 나는 도통 빌어먹을 C를 어떻게 해가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는데, 남들은 잘만 C를 해오고, '아, 나는 응용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인간이구나.' '아, 나는 창의력이라고는 쥐뿔도..' '아, 나는 그냥 능력이 없는 인간이구나.'로 바뀌었다. 노력은 나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고, 어디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도 없었다. 너무 0에서 시작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과제를 해가서 칭찬을 받아도, 도대체 왜 이게 칭찬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까. 나 그래도 다른 곳에서는 말귀도 잘 알아듣고, 일처리도 빨리 하고, 수업 이해도도 높은 편인데, 이건 외국어도 아니고 프로그램 언어도 아닌 주제에 절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몇몇 디자인 교수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학부장 교수님이 뭐라 하시든 시각 디자인으로 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아니면 오히려 시각으로 갔어야 그 언어력이 좀 증가했으려나...) 아무튼 다음 학기에 전과한다고 하는 그 후배 친구도 지금 이번 학기 내내, 아니면 이미 오래 전 부터 이 괴로운 질문에 휩싸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비슷한 처지에 같은 절망을 지나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디자인 분야의 한 부분을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과연 는 디자인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산디 수업에 들어가면 - 교수님이 피피티에 지도 하나를 띄워 주시고는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다. 

"자, 이 지역에 연못에 가면 물고기가 산다. 이 지역에 어떻게 가냐면, 자동차를 타는 방법도 있고, 기차를 타도 되고, 자전거를 타고 된다. 각각의 방법은 어쩌구 저쩌구. 자, 그리구 이 연못에 도착하면 이러한 종류의 물고기가 산다. 자 a물고기는 이렇고 b물고기는 이렇다. 다 잘 알아들었지?"

"(끄덕끄덕)"

"다음 시간 가져올 과제는 물고기다. 물고기 잡아와라."

그러면 나는 신나서 내가 좋아하는(알아들은) 방법으로 연못에 간다. 그런데 연못에 도착하면 ?

물고기를 잡는 법을 모르겠다. 연못에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건지, 그 배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낚시를 해야 하나?

아 참, 그런데 낚싯대는 어디 팔지? 떡밥은 뭘 써야 하지?

멘붕이 온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낚시가 아니라 그물을 써도 되고, 꼭 그 연못에 가지 않고 수산 시장에서 물고기를 사도 된다.

어쨌거나 물고기, 그리고 그 중에서 좋은 물고기를 잡아가는 사람이 좋은 답을 낸 사람이다.

 

 

나에게 디자인은 해결책을 알아서 찾는 것과 같은 단어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던지, 사용하기 편리하다던지,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던지, 그건 그냥 디자인의 결과물일 뿐이다. 디자인학부는 수업시간에 A를 가르치고 C를 요구한다. 학부생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B부분이다. A와 C를 이어주는 어떠한 것. 정답을 푸는 솔루션을 '알아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르친다. 4년간 헤매면서 겨우 스스로 알게 되었다. 아주, 아주 가끔 B를 아주 잘 알려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시다는 소식'만'들어봤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행운이겠지만, 그런 분들은 잘 없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주워듣고(?) 주워 배운(?) 것들을 잘 써먹으면 괜찮은 C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자원들을 참 잘 쓰고, 나처럼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많이 배워도 배워도 잘 써먹지 못한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어떤 사람은 영어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수학을 잘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전과를 한다는 후배처럼 '나는 이 분야가 아니야' 라고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고, 나처럼 이미 깨달음이 뒤늦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 배움을 계속 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이런 생각 정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을 배우는 지'에 대해서 명확히 하면 훨씬 덜 힘들 것 같아서다. 이제껏 무엇을 배웠는지 뒤돌아보기도 좋고.

답답해하면서 포기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대충 하는 그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때의 나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지금 '뭘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이걸 해오라는 거야. 너희는 능력이 많아서 해올 수 있겠지만, 난 이런 거 배운 적이 없는 걸. 난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라고 생각하는 게 빤히 보이는 그 친구에게. 그리고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정의하라면 딱 저런 타입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혼자 찾기 어려워'하는 성격인 걸 조금이나마 보완해 주시려고 나를 이 학부로 보내셨나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리고 살면서 계속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와 상황 가운데서 이걸 기억하자. 말하자면, 지금 당장 취업과 진로와 미래에 관한 해결책이 안 보이는 문제들을 보면서.

 

야호, 결국 한 시간 반 놀았다. 그래도 명쾌하다.

오늘은 명쾌한 숫자공부하는 날이니까, 명쾌하게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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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표도 탈탈 털렸다. 일단 비주얼로 또, 우리가 헤매여서 또, 그렇지만 발표자 말빨로 지나갔다는 부분은 좋았다. 데이터로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짜는 부분이 확실히 내 강점이지. 이제 비주얼 시작인데, 더 많이 깨지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내 특성은 한번 내 논리를 세우면 그게 굉장히 강해서 쉽게 굽히지 않는다는 건데, 그게 와이어 프레임 등을 할 때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피드백을 고맙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해야하나. 상대도 나처럼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시켜야만 그걸 고치려고 하니까, 피드백을 받겠다는 건지..그런 잘못된 태도가 계속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중요** 상대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자꾸 요구하는데 -> 이건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외부의 데이터에 많이 의존함. -> 마찬가지,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이 아님. 
 

디자인은 경제학 문제처럼 교수님께 찾아가서 '이것이 정답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교수님이 '그래! 그게 정답이다!' 또는 '아니다, 이 논리는 이래서 틀렸다!'고 말해주는 분야가 아니다. 교수님의 태도는 늘 '잘 모르겠다'축에 속한다. 교수님의 반응은 0 또는 1이지만,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고,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다만 학부생 쭈구리의 경우 논리나 경험이나 다 레벨이 교수님께 못 미쳐서 맨날 까이는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선 교수님의 정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린 예술가가 아니고 디자이너니까.) 일단 결과물에 명확한(객관적인) 정답이 없는 것도 1차적으로 답답한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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