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관심사/보고 듣고 읽고

확언 03 달란트를 땅 속에 숨겨둔 자

2sim 2021. 1. 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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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일에 로스쿨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다른 사람이 이기려고 짜 놓은 프레임과 박스에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기는 판을 만들어야 100% 이길 수 있다고.
어떻게 그 지혜를 가질 수 있냐 물었더니 그저 성경대로, 말씀이 말하는 바로 돌아가면 된다고 하셨다.


● 내 진짜 열망은 내가 잘 하는 것으로 칭찬 받고 인정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한켠으로는 좀 다른 길을 걷고 싶다.
전문가의 길, 스페셜리스트의 길, 혹은 그저 제너럴리스트의 길로 나아가게 될지라도
뻔한 길은 걷고 싶지 않다는 그런 삐딱한 마음이 늘 맘 구석 어딘가에 존재한다. 누가 나한테 속삭이는 것 같다.
' 그게 편하고 좋은 길인거 알겠는데, 좀 아니지 않아? '
이걸 정말 없애버리면 너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내가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가며 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가끔은 인정한다.
나는 삐딱하지 않은 척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삐딱한 사람이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의 삐딱-이 아니라
두 다리는 평평한 바닥에 대고 있으면서 고개를 갸웃, 하고 틀어서
' 그게 정말이야? ' 하고 끊임없이 우리가 바로 보는 세상이 정말 맞는 것인지
사실 8도 정도로 기울어서 보아야 진짜 수평이 되는 것이 아닌지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것 치고는 사회운동에는 그렇게 관심은 없습니다만.
왜냐하면, ●1에서 말한 것처럼 일단 그 박스 자체부터 조금 의심스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큰 물살을 만들어낼 순 없지만 (그리고 물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쪽으로 흘러가는게 맞아? 하고 질문하고
나같은 한 방울쯤 새로운 탐험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는 정도.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도 새로운 탐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 방울, 존경합니다.


● 누구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었어'
근데 솔직히 돌아보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아니었다. 내 선택이었지.
나는 그 선택들이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행복했고 그래서 불행했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좀 더 행복했을까?
아니,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나는 그래서 행복했고 그래서 불행했을 것이다.


● 나는 독립 인간이 되고 싶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독립인간은 경제적으로 자유한 것이겠지만
경제적 자유 - 이런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나의 독립 인간은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저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을 뜻한다.
혼자서 사고한다는 독립의 뜻도 사실 아니다. 필요하면 타인에게 지혜를 구하고 의존할 수도 있지.
분명한 건 누구에게 지혜를 구해야 할지, 그걸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라는 것.

생각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독립인간이 되고 싶다.

●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것을 땅에 묻어두었다. 절대자의 앞에서 다섯 달란트와 한 달란트는 차이가 없다. 다섯 달란트로 다섯을 벌었든 천을 벌었든, 그걸 바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숫자 놀음은 인간이라는 작은 종족에게 중요하지.
중요한 것은 달란트를 준 주인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걸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달란트를 묻어두는 것이 아니다. 그걸 사용하다 빚을 져서 쫄딱 망하든, 더 벌든. 중요한건 사용하는 것이다.
*위 해석은 개인적인 것으로,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제 다짐한 것

하고 싶어
갖고 싶어
해냈어
했어
성공했어
해봤어

를 많이 쓰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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