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관심사/보고 듣고 읽고

세계의 종말, 우리의 희망은 무엇일까?

2sim 2020. 7. 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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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카페

 

@커피는책이랑 https://www.instagram.com/coffee_chaek/

카페와 커피를 사랑하는 오빠덕에 방문했던 책과 커피를 판매하는 대구북카페 @커피는 책이랑
되게되게 맛있는 음료도 팔았는데... 특이한 이름이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오빠가 덥썩 지른 책도 열심히 읽었다. '해가 지는 곳으로'

표지는 일단 매우 개인적으로 취향. 그런데 표지와 소설 내용이 잘 맞아들어가냐고 물어보면 글쎄, 하게 된다. 제대로 살펴보지는 않았는데 표지는 무슨 작품이었던 것 같다.

책 내용은... 지구에 이상한 바이러스가 나타나서,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고, 전쟁과 불안, 절망이 가득한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 얻기?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지만 
 - 일단 종말적인 분위기가 싫었고 그 덕분에 묘사 되는 사람들의 날 것의 감정이 보기 힘들었다. 현실이 충분히 힘드니까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뭐든 판타지적으로 해피니스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지는 책 - 좋은 글이 있어서 포스팅을 쓰는 중.



그런 게 지나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다른 주인공은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지나를 보면서 그녀가 불행한 상황에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하루의 사소한 일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지나가는, 지나의 삶의 방식을 사랑했다. 지나는 아주 적고 질도 별로인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 이건 콩이네.'하면서 음미하고 씻는 것 조차 사치인, 신발을 발견하면 행운인 상황에서도 머리를 자를 땐 차분히 물을 뿌리고 빗어내리고, 의식을 행하듯이 자르는 사람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지나를 동경한다. 특히 이렇게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 땐 전혀 꾸미지 않고, 잠옷만 입고 다니고 빈둥대면서 사는 나는. '귀찮음'이라는 말은 때로 스스로에 대한 무심함이라고 해석될 때가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가져주려 해도, 한계가 분명하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인간 중에 최고의 존재는 나인데, 나는 매번 귀찮다는 감정으로 나를 홀대한다. 꾀죄죄한 몰골, 꾸미지 못한 옷차림, 정돈되지 않은 내 거주지 같이.

하지만 이 주인공은 지나의 삶의 방식을 동경하지만, 결국 지나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을 고백한다.



지나를 닮고 싶었다.
지나처럼 먹고 마시고 걸으려고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눈앞의 것을 최대한 보고 느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나가 아니고, 지나는 고유하고, 우리는 달랐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나도 늘 동경하는 삶의 방식이 있었다.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지? 누구에게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을 보았다. 다른 이에게는 베푸는 여유로움을 보았다. 그런 식이었다. 나도 누군가를 닮고 싶었다. 가끔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책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고유했고 그래서 달랐다.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나는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절망은 비단 꾸며진 '급작스러운 바이러스'뿐만은 아니다. 일상의 좌절을 잘 묘사했던 점이 더 인상깊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삶을 살아가지만 삶의 틈새마다 또 다른 주인공 그녀는 분노했다. 먼지에게, 청소기에게, 때로는 사람에게. 모두를 위한 거라고, 나도 안다고 살지만 우리는 때로 삶에게 분노한다. 취직이 되지 않아서 무력했던 때에도,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지만 이건 아니라며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칠 때. 그런 부분을 잘 묘사한 부분들도 좋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같은 길을 돌고 도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달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우리만 모르는 해답을 다른 이들은 찾아낸 것 아닐까.
낯설지 않은 생각이었다. 어른이 된 뒤 지속적으로 들던 의구심,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덮치기 전에도 종종 하던 질문들.......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금방 가난해졌다. 가난하면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를 부모의 사랑만으로 치유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의 눈총과 무시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나는 몰랐다. 몰라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었다. 책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그런 방법을 알려 줬다. 그건 글자로만 배우는 요리와 비슷했다. 차라리 돈을 버는 게 쉬웠다. 돈으로 아이들의 조건을 평균까지 끌어올려 주는 게. 그러려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분명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최선이 답이 아니란 생각이 세금 고지서처럼 주기적으로 날아들었다. 삶이 마디마디 단절되어 흘렀다. 직장에서의 나와 아이들 앞에서 나와 단을 대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징그러울 만큼 달랐다. 나라는 사람이 흐트러진 퍼즐 같았다. 애초의 내가 어땠는지 밑그림은 기억나지 않았고 퍼즐은 흩어진 채 여기저기 떠돌았다. 무언가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어서 먼 훗날 완벽하게 분리될 것만 같았다. 나와 내가, 나와 단이, 나와 아이들이.




오히려 갑작스럽게 닥친 생존에의 위협은 이런 일상의 좌절을 해소한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게 된다.



지킬 것은 지키고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의문을 품는 것. 한국에서의 삶이 그랬다. 이곳의 삶이라고 다를 것 없다. 아니,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홀해지지 않을 수 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유심히 보고 듣고 아낄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을 미뤘다. 내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하면 되니까. 기나긴 미래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젠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이 책이 갑작스러운 종말적인 병을 이용해서 말하고 싶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잘 와닿는다.

최근에 '열정에 기름붓기'에서 mindset이라는 책을 추천하는 카드뉴스를 발행했다.
성장형 사고방식과 고정형 사고방식에 대해 비교한 책이었다. '성장형 사고방식'이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는지 답답했는데, 거기에 적혀 있었다. 

매일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습관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아주 작은 일을 할 때 조차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할 것.

그 실천사항으로 블로그에 계속해서 글을 쓴다. 사소했던 일들. 나는 남들이 보기엔 삶에서 늘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 처럼 보인다. 때로는, 아니 자주 나도 늘 그런 내가 불만스러웠다. 왜 나는 적극적이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앞에서 말했던 동경하는 삶의 방식 중 하나에는 적극적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의 방식도 있었다. 내 삶의 방식이 싫으니까 내 경험을 무시하게 되고, 내가 배웠던 것들도 무시하게 되었다. 내가 한 건 별건 아니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살펴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화려하거나 많은 이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매일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자라난다. 시작은 적극적이지 못해도 일단 시작한 후에는 충실한 편이다.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싹틔워서 성실하게 맡은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원하는 준비된 인재-는 아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잠재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도전정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새로운 시도도 관심이 있고 리스크가 적다고 느껴지면 도전해본다. 성격이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도전 자체보다 '도전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채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결국 주인공은 지나처럼 살 수는 없었다. 둘이 겪은 삶이 너무 달랐으니까. 대신 주인공은 지나라면 어떻게 잘랐을지 찬찬히 머리에서 생각하고, 원래 자신의 방식으로 머리를 자른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삶의 방식은 아마 지나가 동경했을테니까. 험한 일을 당하고도 똑바로 서서 강하게 살아가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완전한 삶의 방식은 없다. 고유한 방식이 있을 뿐.
그러니까 나도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닮아가면서도 또 오롯히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겠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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