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관심사/보고 듣고 읽고

나는 네가 요만큼만 미워

2sim 2020. 9. 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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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 나 전보다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된 글.

이제는 누가 나를 비판하는 것 같아도 마음이 꽤 괜찮다.
어릴 때는 누가 그럴 것 같다는 생각만 해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렇군요,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정리된 사실 하나는,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는 것.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상상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울 수 밖에 없다. 매를 언제 맞을까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매를 맞아버리는 게 낫다는 걸 이젠 몸으로 체화한 것 아닐까.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나)이 자주 빠지는게 자책 time인데 이 굴레에서 빠져나올 때 생각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대책없이 덮어놓고 스스로를 좋아하자, 더 아끼자 외치는 건 잘 먹히지 않는다. 원래 가진 기준이 타고나길 높게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 기준을 무시해버리라고? 그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밤에는 그냥 대놓고 묻기로 했다.
"너는 뭐가 맘에 안 들어?"

너는 이렇고 저렇고, 저렇고 어쩌고.

나는 내 행동의 이 부분이 싫다. 마음에 안 든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콕 집어버리자,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부분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다. 보통 내가 중심이 없어 그랬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응원을 바라는 건,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전부, 모두, 다, 부족해보여서.

그런데 그냥 대놓고 물으니 별거 아니네. 이정도는 남들도 다 끌어안고 사는 단점인데. 뭐 그리 내 눈에 티눈이 남들 대들보만큼 커보였을까. 그냥 그 부분이 싫은 거지 내 전부가 싫은 건 아니잖아.

앞으로도 자책감이 들면 물어봐야겠다. 너는 뭐가 그렇게 밉고 싫으냐고. 그리고 우리 딱 거기까지만 미워하자고.

"그래 그럼 그 만큼만 미워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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