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관심사/보고 듣고 읽고

남자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어쨌든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2sim 2020. 7. 12. 19:01
728x90

 

2014년도 한국 에세이임을 참고..

 

수수께끼 같은

남자들의 미의식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 여자들이 자신과 새끼를 돌보아 줄 정성과 능력을 보이는 남자들에게 끌리듯, 남자들도 단지 유전적 우월성뿐 아니라 '다른 놈이 아닌 내 유전자만을 가진 자식을 낳아 줄 확률이 높은 인간 여자'에게 끌리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외모도 '다른 남자에게는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암시를 건네는 쪽이 훨씬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판타지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신체적 조건 이라기 보다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이미지다. 

 

어떤 여자들은 남자들이 양육 받은 것과 정반대의 성향인 다정함을 요구하면서도 그들의 편향적 취향을 무조건 비난한다. 자신의 취향을 없애고 스스로를 남자들의 판타지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지만, 이제까지 그들을 형성한 생물학적, 문화인류학적 배경을 무시하고 전체를 '마초'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들로서도 억울한 일이다.

 

알고 보면 

여자보다 불쌍한 

남자들

 

남자들은 여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가 화를 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당황하고 상처 받을수록 모르는 척 되도 않는 우스개로 화제를 돌리려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여자가 점점 남자에게 무시 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자꾸 딴청을 부리는 남자에게 더 화가 나는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공격 강도를 점점 높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금련처럼 남자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끊임없이 주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여자들은 평등하지 못한 가정에서의 위치 때문에 결혼 후 참 고생이 많다. 그러나 남자들의 속도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편하지는 않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밟고 올라서야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들이 아니다.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남자들은 아내가 불행하면 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을 받는다. 아내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못난 남자로서 정체성에 상처를 입은 그들도 당사자인 아내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아픈 것이다. 다만 '남자병 (상처받을 만한 일을 자초해 더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상처를 내보여 치료받을 수도 없는, 그러면서도 동정받기는 또 죽기보다 싫어하는 병)' 때문에 표현을 못할 뿐이다. 그런데도 여자들에게 그들은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이 된다. 자신이 왜 얼마만큼 힘든지 설명할 재주가 꿈에도 없는 그들은 오늘도 '남자가 밖에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 같은 상투적인 말로 여자들의 화만 돋우며 스스로를 아무도 몰래 불쌍하게 만들고 있다.

 

남자를 이해하는 

단 하나의 코드,

남자다움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를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자들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감정'이라는 것에 따라 여자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때문에 나오는 행동을 무슨 용빼는 재주로 이해하겠는가. 그런데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남자 또한 이해 불가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남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남자다움'이라는 단 한 개의 열쇠다.

 

문제는 그런 남자들이 실은 내적으로 우리 여자들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데에 있다. 손가락을 종이에 베인 작은 상처도 똑같이 아프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똑같이 기분이 상하며, 추운 날 옷을 얇게 입으면 똑같이 춥다.

 

그들의 남자다움을 존중해 주는 것 - 최소한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자들이 그들과 사이좋게 지낼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보면 된다.

 

남자에게

의리는 있지만

진짜 친구는 없다

 

그런데 이런 남자들의 친구 관계의 문제점은 그들이 관계를 통해 감정의 이완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확실한 해결책을 알고 있지 않는 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려 들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친구의 정의가 '상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관계'라면 남자들에게는 진짜 친구가 없는 셈이다.

 

왜 모든 여자의 로망은

게이 남자친구인가

 

여자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남자에게 무방비로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건 보통의 남자들에겐 없는 능력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여자의 마음을 여는 정당한 방법은 노력이나 능력이다. 아름다운 외모나 정서적 소통 따위의 (그들 입장에서) 변칙적인 방법으로 여자를 유혹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그들이 여자에게 없는 것 - 여자의 1.6배에 달하는 근력, 예리하지 않아 곰처럼 편안한 둔한 감성, 여자를 지켜 주는 흉내라도 내려는 데서 오는 안정감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동성 친구들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같은 이유로 여자들은 여자 친구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남자 파트너에게서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찾아보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여자 마음을 알아주는 바람둥이의 백 스무 번째 여자친구가 되거나, 내게는 관심도 없을 성적 소수자를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 있다. 남자와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노력은 한다'는 것에서만 위안을 얻고, 동성의 친구들을 통해 원하는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여자들은 눈치채기 힘들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정말로 여자를 이해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남자에게는

베아트리체가 필요하다

 

남자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들은 저마다 여자 파트너에게 자기 감정을 담고 있는 외장 하드를 맡겨 두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없이는 세상이 주는 감정적 파고와 스트레스를 해석하고 수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자기 여자에게만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게 남자가 결혼만 하면 어린애가 되는 이유이며 오래된 남자친구에게 실망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누군가의 베아트릭체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나 하나 구원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남의 인생을 구원하는게 말이 되냐고 탄식해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구를 구하느라고 또는 구하는 척하기 위해 수만 수천 년 전부터 자신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잃어 버린 남자들에게는 스스로의 존재를 일깨워 줄 여자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되라는 것은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인격 장애자를 변화시키고 구원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평범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자신 안에 들어온 남자에게 마음을 너그럽게 여는 것이다. 내심 한심하더라도 못난 모습을 품어 주고, '너는 진짜 남자'라는 것을 끊임없이 표현해 주면 된다.

 

모든 커플의 비극은 서로가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아우성일 때 비롯된다. 자신과 상대의 감정을 읽고 표현할 능력이 있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쉽다. 여자들은 남자가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여자가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그도 그녀를 구해 줄 수 있다.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

그러나 남자는 

남자를 더 모른다

 

남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의존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 혹은 애인이나 아내와 같은 파트너가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을 통해 자기 감정을 짐작한다. 그래서 종종 우울한 미남자에게 끌리기도 하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무조건 긍정적이고 밝은 여자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자들은 기분이 엉망일 때, 남자 파트너가 제대로 위로하고 품어 주지 못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화를 내기 일쑤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한 번쯤 남자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금 속으로 몹시 당황하고 있다. 자신이 짐작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당신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무얼 해야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럴 때 여자가 구체적으로 말을 해준다면 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이해 못해 엉뚱한 말을 할 때마다 더 신경질이 나. 그냥 아무 말 말고 손만 꽉 잡아 줘."

"뭔가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도 같아."

 

여자들에게 필요한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남자들의 맞춤식 위로가 아니다. 크게 도움도 안 되는 말만 늘어놓을지라도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하는 그의 노력 자체만으로 스스로 위로를 챙길 수 있는 마음이다.

 

 남자,

유리 큐브에

스스로를 가두다

 

남자가 친한 친구에게 당당히 위로받으려면 적어도 부모상이나 실직, 이혼 정도의 큰 사고는 당해 줘야 한다. 그나마도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걸 시시콜콜 말하는 과정이 남자들로서는 하는 쪽에서나 듣는 쪽에서나 고통인 것을 아니까 '어깨 한번 툭툭 두드려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들 하는 것이다.

 

모든 남자는

스파르타에서 태어난다

 

남자들이 행복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콕 집어 말하자면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랑만큼 추상적인 말이지만 사랑은 그보다 이해하기 쉬운 감정이다. 아무리 둔한 남자라도 누군가가 보고 싶고, 죽도록 함께 있고 싶다면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자신이 원하는 상태'와 '지금 기분이 좋은 상태'중 어떤 것이 진짜 행복인가에 대한 판단이 안 서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자들이 둘만의 관계가 주는 행복에 집중하고 더 발전시키고 싶어 하지만, 남자들은 그 기대를 따라오지 못한다. 아무래도 자기 감정을 이해하는 데 서툴고 거기에 오롯이 집중하지도 못하는 남자와 따뜻하고 정적인 행복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연애 시절 몇 시간씩 같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상대에 몰입하던 건 남자들에게 호르몬이 요동치는 스펙터클한 활동이었으며,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남자들에게 행복이라는 말이 가장 근접할 때는 게임이나 취미처럼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무언가에 몰입할 때일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행복을 이해하게 되면 여자들은 한 남자와 오랜 관계를 지속할 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될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남자와

대화라는 것을 하는

몇 가지 방법

 

남자와 대화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란 여자에게는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며 오락이지만 남자에게는 집중력을 요하는 노동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휴식이 필요할 때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대화는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맺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살면서 겪는 문제들이 대화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화는 그 문제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만들어 준다. 대화를 함으로써 그는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정말로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이야기를 들어 줄 기력이 없다. 특히 남자가 대화 능력이 상실했을 때에는 그에게 당신의 말을 들려 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의 말을 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그가 하는 말에 반발을 하고 싶더라도 일단은 참고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 남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충분히 대화에 몰입해 있을 때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그제야 그는 상대가 하는 말의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것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비요른 쥐프케는 남자와 대화할 때 '삼각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남자들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나 제 3의 다른 대상을 함께 바라보면서 하는 대화는 상대적으로 편안해한다고 한다. 실제로 드라이브를 한다든지, 스포츠 관람을 한다든지, 함께 요리를 한다든지 하면서 대화를 하면 그들은 보다 순순히 말문을 연다.

 

손으로 뭔가를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속삭이고 있던 그들은 삼각 대화를 제대로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남편과 연애하던 15년 전 그런게 있었다면 같이 있고는 싶은데 서로 할 말은 없었던 숱한 상황들을 면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건 간에 자기 앞에 있는 남자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함께 제대로 대화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랑을 하면 사람이 변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구적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잠시 미쳐서 그러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성실한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자들은 그 마약의 '약발'이 다 된 이후에도 인위적인 노력으로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을 하고 지속시키겠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이전 상태 그대로 돌아가게 된다. 모든 여자들은 남자가 약 기운에 취해 하는 행동을 보고 평생을 결정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동의'를

여자에게는 '공감'을

 

'당신 말이 맞아'

 

연애 초기에 남자친구의 '유체 이탈'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그 시기의 특성상 남자의 관심이 온통 연인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우뇌와 좌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른 일로 재빨리 관심을 옮기지도 못한다. 연애 초기에는 온통 여자친구에게만 집중하고 긴장하게 되니 적어도 그녀와 대화할 때만큼은 얼빠진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계가 유지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피차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남자가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이 잦아졌다면, 그건 그가 변한 게 아니라 둘의 관계에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신호다. 똑같은 장소와 환경에서 매일 만나며 당신에 대한 그의 집중력을 시험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자의 책임감

여자에게 

적인가 아군인가

 

여자들은 함께 일을 하는데도 집안일을 여자에게만 떠넘기는 것을 남자들의 이기심 때문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바로 '책임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실제로 자신이 집안의 모든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만약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돈 벌 능력을 잃어버렸고 살기 위해 누군가가 구걸이라도 해야 한다면 평균적인 남자들은 그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머릿속은 누군가의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으로 꽉 차있다. 그 심리적 책임은 남자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워서 남자들이 그 외의 어느 것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와 자식들을 보호하려는 것, 여자가 남자의 안정적인 책임 안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의 본능이다. 그러나 100년 전만 해도 40대까지밖에 살지 못하던 인간이 130세의 기대 수명을 바라보게 된 요즘, 유전적 의무와 본능을 바탕으로 한 관습에 서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제 여자들이 보다 균형 있는 삶을 남자와 나누고 싶다면, 그의 마음 속에서 '남자로서의 책임감'을 나눠 받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대책 없이 무책임하게 행동하려는 심리가 있다. '능력 없는 남자'보다는 '무책임한 남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남자를 대할 때, 책임감을 덜어 주면 그가 그 책임감을 핑계로 회피하고 있는 수많은 의무들을 어느 정도 그와 나눌 수 있다. 서구의 여자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도 그녀들이 남자들의 책임을 상당 부분 나눠 가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들의 권리를 상당 부분 빼앗고 원하는 수만큼의 아내를 둘 수 있는 아랍 남자들은 자신의 모든 아내들에게 똑같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엄청난 책임을 진다.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현대의 남자들

 

많은 여자들은 최근 수십 년 사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오히려 부담만 늘었다고 불평한다. 경제 활동은 남자와 똑같이 하면서도 대개 전문 인력이 전담하는 가사나 육아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까지 덤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은 여자들이 가정일과 바깥일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쓴다는 뜻의 '슈퍼우먼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낳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들과는 반대로 자신들이 힘들기 그지 없는 '남자 역할'에 '여자 역할'까지 덤으로 강요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남자가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다는 것은 웬만큼 강력한 자존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붙들고 시어하는 남성성을 억누르고 여성적인 배려를 하려면 보통 이상의 자기 통제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신이 뼛속까지 진짜 남자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대개의 남자들은 밖으로라도 남성성을 인정받아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다. 그들에게 '가정을 책임지는 심리적 압박과 동시에 다정한 가장'이 되어 달라는 요구는 곧 슈퍼맨이 되라는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로 여자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알 수 없을지라도, 남자들이 변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나비 더듬이 털만큼의 노력의 기미를 알아챌 때쯤 그들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여자들이 할 일은 남자의 세계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온통 여성적 가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사느라 불안에 떨고 있는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남자병'을 앓지 않는- 혹은 앓더라도 곱게 앓는 후손을 길러 내는 것이다.

 

왜 남자들은

철이 들지 않을까?

 

다음은 아이를 키울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양육 태도 중 일부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할 때에는 '네 맘대로 해'라고 말하지 말고, '사자 인형 할래, 토끼 인형 할래?' 하는 식으로 선택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칭찬을 해 긍정적 강화를 한다.

아이가 공격적이 되면 무조건 야단치기보다는 먼저 아이를 그렇게 만든 심리적 원인을 찾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타인의 입장을 생각할 수 없으므로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려면, 먼저 아이의 입장과 감정을 읽어 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아이인 이유는 '자기중심적 성향' 때문인데, 남자들은 여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자기가 덥다는 상황 이외의 것을 고려하지 못하는 그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 아이에게는 자신의 욕구 이외의 것을 배려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남자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원래 남자가 늦게 철이 든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우리 뇌에서 차원 높은 사고와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전두엽인데 이 전두엽은 여자는 스물 네 살, 남자는 서른 살이 되어야 성숙된다고 한다. 

 

사람은 40대까지의 취미를 평생 가져가게 된다고 한다. 뇌의 전두엽이 노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40대 후반 이후에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이후에 새로운 것을 배워 취미로 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남자 안에는

헐크가 있다

 

남자와 오랜 시간을 공유해 본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런 흉폭한 모습을 목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남자들이라면 무대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며 그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경험상 이럴 경우 남자에게 왜냐고 물으면 '걔가 날 화나게 하잖아요'라고 할 뿐 왜 화가 났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 단순하다는 남자들을 여자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일 것이다.

 

이와 같은 남자들의 '버럭'은 감정을 제때 배출하지 못해서 계속 열이 올라가 끝내 과부하를 일으키는 게 원인이다. 

여자의 경우: 오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임을 미리 알린다 -> 상대가 평소보다 기분을 맞추어 주려고 조심하게 되고, 첫 단계부터 과부하의 가능성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남자의 경우: '아직은 남에게 알릴 만큼 일이 크지는 않다'라고 생각해 말을 하지 않는다 -> 상대방은 그를 기분 상하게 할 만한 행동을 적절한 때에 멈출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달구어져 가는 감정은 수증기처럼 조금씩 팽창하다가 어느 순간 이성이라는 주전자 안에 담아 둘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폭발하여 뚜껑이 날아가는 것이다.

 

남자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그나마 분노가 유일하다.

슬프다 -> 화를 낸다

무섭다 -> 화를 낸다

절망적이다 -> 화를 낸다

외롭다 -> 화를 낸다

 

여기서 여자들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멀쩡하던 남자가 근래에 부쩍 화를 더 낸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적신호다. 남자들의 우울증이 화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사실이다.

 

그는 왜 항상

냉동식품을

냉장칸에 넣을까?

 

여자들은 스스로가 덜 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능숙해지도록 학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제 남자들이 권위 하나만으로 가정에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내내 밖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씩 집에 있는 시간에도 신문이나 TV만 보던 아버지들이 바보라는 걸 눈치챌 수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는 못하더라도 일종의 생활비를 대는 '스폰서'로서 인정과 존경을 받았지만, 이제 더 나은 삶의 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남자에게서 그보다 많은 것을 원한다. 그들은 삶을 함께하지 않는 가족원을 심정적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에 가정의 경제를 홀로 지탱한다는 자부심으로 남자 정체성을 충족받았던 남자들은 이제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요즘 들어 중년 남자들이 부쩍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남자와 더불어 사는 데에 프로가 된 내 선배 하나는 남편이 집 안 청소를 도와주거나 집안일에 관심을 가져서 좋은 의견을 내놓으면 '정말 완벽한 남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게서 그 이야기들 전해들은 다른 지인은 바로 시험을 해 본 모양이었다.

"세상에, 그게 먹히더라고!"

'와 역시 자기는 생각하는 게 남자답다. 나는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언젠가 

당신의 남자가

40대가 될 때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남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여성적인 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남자가 마흔을 넘기고 순해질 대로 순해진 다음에야 조금씩 자신의 내면과 가족에 눈을 돌리는 것은 너무 늦다. 남자들이 40대 이후까지 무사하기 위해서는 힘과 능력만으로 삶의 가치는 매기는 습관을 일찌감치 고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자다.

 

남자들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는 건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이의 기분을 전혀 읽지 못하고 엉뚱한 타이밍에 장난을 거는가 하면, 아이가 기분 상할 만한 농담을 해서 끝내 울리기도 한다. 아빠와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엄마처럼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단련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나! 이렇게 소통에 서툰 남자들이 사적 영역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중재해 주고, 그들이 눈길을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과 교감의 세계로 안내함으로써 '인생이 참 살 만한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게 여자의 역할인 것이다.

 

남자가 가족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끊임없이 대화를 이끌어 내기, 집안일에 참여시키기, 그리고 그가 언제나 믿음직한 진짜 남자라고 스스로 느끼게 해주기 등을 포기하지 않는 것 등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며 가장 효과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제대로 관리된 마흔 살 남자는 찬란한 시간들을 함께하기에 스무살 청년보다 더 좋은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남자의 우울증이

더 무섭다

 

남자가 전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의심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여자가 생겼거나, 우울증에 걸렸거나. 만약 후자라면, 그 어느 때보다 그에게는 여자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다. 여자는 너무 많은 말을 하려 들지 말고, 늘 밝은 표정을 보여 주며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자기 여자가 어떤 못난 모습이든 포용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때서야 그는 조금씩 자신의 약한 구석을 내보일 거다. 물론 그것만으로 나아질 정도가 아니라면 전문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남자는 좌절하면

못난이가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남자는 자신이 진짜 남자라고 느낄 때에만 사람 구실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훌륭한 남자들은 훌륭한 사람이기 이전에 '자칭 진짜 남자'인 것이다. 능력 있는 남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상처를 입은 남자들에게 인륜이나 도덕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무능력한 남편들일수록 집안일을 절대로 돕지 않는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가 녹초가 되어 들어와 밥을 하고 청소를 할 때까지 실직 가장들은 집안일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왜냐 하면 '집안일' 이라는 여자 영역의 일은 그렇지 않아도 상처받은 남성 정체성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밖에서 다른 맹수들에게 물려 상처를 입고 동굴로 들어와 성질만 난폭해진 짐승을 대하는 여자들의 결정은 둘 중 하나다. 냉정하게 동굴을 떠나 다른 건강한 수컷을 찾거나, 그 성질머리를 받아 주며 상처를 치료해 주거나.

 

만약 후자를 택한다면, 여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매뉴얼이 있다. 되도록이면 밝은 표정을 짓고, 그의 긍정적인 행동들에 대해 '대단하다', '남자답다', '능력 있다' 등등의 칭찬을 자주 해준다. 당신이 그의 거울이 되어 '남자다운 남자'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

요즘 심리학계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이며 사람들이 논하는 것만큼 성질머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점'에 그토록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달라서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두 종류의 인간이 그 다름을 이해할 때에 최소한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

 

기본적으로 여자는 관계에 있어서 전문가다. 남자는 누구나가 특정한 부분에서는 자폐아처럼 자기중심적이라 남자 입장에서 제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여자 쪽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온갖 관계의 위기를 넘기고 드디어 무대만의 귀여움을 찾아낸 금련처럼, 이 책을 읽은 모든 여자들이 보다 허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한 시각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728x90